도드레흐트의 카페 아구스투스. 예전 빌라를 호텔로 쓰고, 그 정원에 온실을 만들고 온갖 유기농 경작을 하고 있다. 그 나른함과 전원풍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곳. 물건의 질은 그런데 솔직히 별로다.
카페 아구스투스 내부. 요즘엔 워낙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엄청 민감하다...
정원에 핀 봄 꽃들. 괜히 이름을 불러보려하지 않으련다.
카페 아구스투스 내부에서 당근케익을 시켜 놓고 흐믓해하는 나. 날씨가 추워서인지 머리가 아직 안 말랐었다. 밤에 누우니 감기걸리까 영 찜찜하다는. 허나 누굴 탓하리오.
날씨가 내내 좋던 한국은 설이 있던 주말...난 참 제정신인가 싶은 주말을 보낸 듯 하다. 설인 금요일에는 나름 명절 분위기를 낸다고 굴로 국물을 낸 굴 떡국과 새우전, 김치빈대떡, 굴전을 부쳐서 먹고는 (당근 요리하는데 노력들어간다), 이차로 스시집에서 친구와 스시와 뎀프라, 우동을 먹었다..... 그리곤 덴하그에 다니러 온, 한국에서 온 지인을 모처럼 만나러 덴하그까지 행차하며 삼차...
토요일은 전날의 행보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채로 일단 항상하던 운동클라스로 달려갔는데, 하필, 수업을 어떻게든 더 뻑세게 해 주겠어... 하는 강사가 둘이나 나와서(자기들도 지치니까, 30분씩 교대로 1시간을 채운다) 원래하던 바디컴뱃보다 더 심하게..ㅠ...그리고 요가같은 바디발란스로 몸을 좀 풀고 집으로 왔더니 피곤은 피곤... 집 밖으로 나가려던 계획을 바꿔 음식 하나 만들고, 전날 끓여놓은 떡국과 전으로 점심과 저녁을 맛있게 해결하며 에라 모르겠다 쉬자... 만들 땐 꽤 만든 것 같았는데 혼자 두끼 더 먹으니까 다 없어졌다. 내가 많이 먹는 건지, 만든 양이 적었던 건지 헷갈린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엔 동네 동생과 그의 이쁜 아가와 아침 약속이 8시반부터 있었다. 미국식 두툼한 팬케이크와 메이플 시럽, 드립커피 생각에 아침이 얼마나 기다려 지던지.. ㅎ.. 전날 빡센 운동의 쑤심을 절감하며, 오늘 아침 달리기 하자는 달리기클럽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운동 못하지 싶어 대답 안하고 아침식사 장소로 날래날래 걸어 갔더니, 분위기 좋고 ㅎ. 난 아침을 안 먹으면 집밖에 못 나오는 체질인데 굶고 나와서 게다가 오늘은 달리기를 쉴 요량으로, 한 2킬로를 걸어오니, 엄청난 양의 메이플 시럽이 부어진 검게 탄 팬케익도 다시 해달라는 말하기도 너무 허기지고 귀챦아서 좋다고 다 먹어치웠다... 그런데, 동생이, 오후에 고풍스러운 옆동네 정원꾸미는 책도 파는 카페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는가!, 얼쑤! 그러마고 하고 일단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가게를 나왔는데.......
이런.. 배는 부르겠다, 날씬 화창 청명하고, 공기는 싸아하고, 그 길을 일단의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달리기에 삘이 받아 오후에 동생을 만나기 전에 좀 달려야겠다 싶어 쌩쌩 집으로 달려가서 달리기를 하러 옷만 바꿔입고 다시 뛰쳐나갔다. 예상은 했지만, 남자 4명에 여자는 나 하나. 거기다가 남자들중 한명은 한달에 한번씩 풀마라톤을 해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세시간 정도면 들어오는 말그대로 달리기를 위한 몸을 타고난 괴물... 한 10킬로만 달려야지 하고 나갔기에, 잘 달리는 남자들한테 알아서 헤어지자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나마 주선자가 나 정도 달리는 남자애여서 갸한테 딱 붙어 달리면 된다 싶었는데 아뿔사... 이눔이 잘달리는 남자들 페이스에 지기 싫어서 초반부터 원래 가능한 페이스보다 훨씬 빨리 뛰기 시작하고, 짧게 달리다가 돌아올 수 있는 루트가 아닌, 잘달리는 남정네들이 가려는, 가면 간만큼 돌아와야하는 로테강을 따라 달리는 경치는 아주 좋은 루트를 선택한 것... 결국 졸지에 18킬로를 넘게 달려버렸다, 그것도 초반에 나도 덩달아 빨리 달리며. 잘달리는 남자들은 나중에 알고보니 25킬로 정도 달리고 각자 헤어졌다고...
그나마 오후에 약속이 있었기에 시간에 맞추려 18킬로미터를 2시간 안에 달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니 약속시간이 15분 남았다... 미친듯이 머리도 안 말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에 모자를 뒤집어 쓰고 동생집으로 다시 뛰쳐나갔다, 당 떨어져서 성질더러워질까봐 99% 다크 초콜렛 거의 한팩을 가는 길에 늦은 점심으로 해결하며...
동생과 도착한 도드레흐트라는 고풍스러운 작은 도시의 카페겸 숍은 다행히 그렇게 하며 올만한 가치가 있게 평화롭고 좋았다. 그곳의 당근케잌도 맛났고ㅎ. 땅에서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하는 이름도 모르는 꽃들도 좋고, 거대한 온실 같은 카페에 앉아서 하이티를 시켜 삼단에 걸쳐 있는 온갖 단 베이커리류와 티 한폿씩 여유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냥 노골노골...
집에 5시쯤 돌아오니, 식료품 쇼핑과 저녁 미사를 보러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온몸에 피로가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무엇보다 배고픔이 너무나 밀려들었다. 사실, 내 위장의 거대함에는, 칼로리는 많아도 초콜렛 한판과 당근케익 한쪽은 서곡에 불과... 결국 5시부터 도드레흐트에서 사온, 일반 상점에서는 흔하게 발견할 수는 없는 말린 토마토를 넣은 빵과, 아보카도를 썰어 올리브유를 뿌리고, 토요일에 만든 야채음식 등등과 디져트로 잼과 피넛버터를 듬뿍 바른 빵과 홍콩 아몬드쿠키 한통을 바닥이 보이게 먹고 나니 정신이 난다... 식료품 쇼핑도, 성당도, 2시간에 걸친 저녁식사 동안엔 안중에 물론 없다.
이렇게 일요일을 보내고 배가 차고 나니, 뭐랄까... 뭔가 재미난 이벤트가 넘치게 많았던 하루이고 주말인데, 그에 못지 않게 엉망으로 살았다는 울적함이 밀려든다. 건강상의 이유로 유제품을 내가 사거나 만드는 음식에서는 제거했는데, 못이기는 척 먹은 아침의 팬케익은 버터 덩어리에, 게다가 아크릴아미드 덩어리...시커맣게 탔다... 달리기도 10킬로만 하고 들어왔어야했으며,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지 말았어야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일반인들처럼 돌아다니고 안 좋은 음식을 먹을 건강상태가 아니지 않은가... 내일부터 한주가 또 시작인데, 집 청소나 빨래도 안되어 있으며, 식료품 장도 보지 않았다... 급 우울해진다.
역시, 주말은 하루만 놀아줘야한다. 해야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좀 줄여야하는게 내겐 옳다 싶다.... 날이면 날마나 이런 것이 아니니 너그럽자 하면서도, 검게 탄 팬케잌 사진을 볼때마다 저걸 그리 좋다고 다 먹어치우고, 수술한 부위에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고, 아프다 하면서 이렇게 양껏 달리기하고 운동하고 돌아다닐 일도, 기운 넘치는 양 오만데 만날 사람 다 돌아다닐 일이 아니다....
이번 주말은 이미 지났다. 날이면 날마다 생기는 일이 아니니 즐겁게 자자..
아침식사로 먹은 팬케이크. 차라리 사진을 찍지 말았어야했다. 정신이 나니 볼때마다 내가 미친거 아닌가, 저 시커먼 것을 돈 내고 다 먹어치우다니 싶다. 먹으면서 들쳐보기까지 했는데 전체 색이 다 저랬다..ㅠ.
아가용 아침식사로 시켰던 Acai pudding....역시 내가 꽤 먹어치웠다.
아침을 먹은 로텔담 내 카페 내부. 분위기는 이렇게 좋은데. 서빙도 무료 리필 커피 등등 완전 맘에 드는데... 요리는 솔직히 못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신선한 감자 팬케익을 기대하며 시킨 해쉬브라운은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물론 다 먹어치웠지만.
결국 그렇게 예상치 않게 많이 달린 오늘 달리기... 다행히 달리기하며 그리 힘들진 않았다. 그러니 달렸지. 이번주엔 어쨋든, 풀마라톤 거리를 얼추 달렸다. 거기에 운동센터까지... 운동도 좀 자제력을 가지고 해야할 듯 하다.
'일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 쿠키 (0) | 2018.02.25 |
---|---|
슬로우 쿠커 요리 두점 : 떡과 닭다리찜 (0) | 2018.02.25 |
슬로우쿠커 (0) | 2018.01.28 |
1월 6일 닥치고 먹기 (0) | 2018.01.08 |
내 편한대로 건강식 (0) | 2018.01.02 |